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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07 08:47
고도(古都) 상주의 표징(表徵) 「상주 병풍산 고분군 - 김광희[상주향토문화연구위원]
 글쓴이 : 상주문화원
조회 : 185  

고도(古都) 상주의 표징(表徵) 「상주 병풍산 고분군」

상주시 동문동 병풍산 일원

 

상주 동쪽 낙동강 가에 여남 지맥의 끝자락인 병풍산(屛風山, 365.6m)이 솟아 있는데, 상산지에서는

「屛風山 在州東十里自甲長來(주의 동방 십 리에 있으니 산맥이 갑장산에서 뻗어왔다.)」로 적었고, 「沙伐國古城 在屛風山城傍有丘隆然世傳沙伐王陵新羅末甄萱之父阿慈介據此城…(병풍산에 있으며 성 옆에 높다란 언덕이 있으니, 예로부터 사벌왕릉이라 전하고, 신라 말 견훤의 부 아자개가 이 성을 점거하고 있었다 한다.…)」라 적고 있다. 이곳에 고도(古都) 상주의 표징(表徵) 상주 병풍산 고분군(古墳群)이 있으니, 지방기념물 제125호(1998. 4. 13)이다.

 

병풍산 서쪽 아래 헌신동(軒新洞)은 상주군 내동면 지역이었고, 1914년 내답리(內沓里)·병상리(屛上里)·신부리(新部里)·어헌리(漁軒里)를 합하여, 어헌과 신부의 이름을 따서 헌신리라 했으며, 북쪽 아래 병성동(屛城洞)은 내동면 지역이었으며, 병성산 아래가 되므로 병성(屛城)이라 했다고 하는데, 이곳에 조영(造營)된 고분은 상주시 최대 규모의 고분군(古墳群)이다. 이 산 아래로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나가게 되어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그 부분을 발굴하였는데, 병풍산에서 북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과 금동골 마을의 동쪽에 북쪽으로 뻗은 야트막한 능선이다.

 

병성·헌신동 고분군을 직접 찾아보기 위하여 병풍산 서북쪽으로 가장 길게 뻗어 내린 끝자락에 솟은 벼락 바우산(68.5m)에서 시작을 한다. 병성천 제방에서 올라서면 제법 규모가 큰 고분을 만나는데 도굴(盜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병풍산 쪽으로 오르면서 몇 기의 고분이 보이고, 많은 민묘(民墓)가 조성되어 있다. 경천로를 가로질러 산으로 붙으면 복원한 10~11기의 고분을 보게 된다. 주변에 봉분 가운데가 내려앉았고, 도굴 흔적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여러 기의 고분이 눈에 들어온다. 계속 오르면 크고 작은 봉분이 소나무와 참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있어도 봉분 형태는 확연하다. 여전히 단 한기의 고분도 파헤쳐지지 않은 곳이 없는데,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나가기에 산줄기가 끊어졌다.

 

고속국도 위 헌신 육교를 건너려니 철조망으로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억지로 빠져나와 점점 고도를 높여 산줄기를 오르니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고분이 산재해 있다. 조금 평평한 곳에는 규모가 크고, 경사가 심한 곳은 적은 데, 이는 천수 백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자연발생적인 현상일 것이다. 정상 직전 260m대 까지도 고분이 자리하고 있는데, 한 고분 주변으로 여러 기의 고분이 원(圓) 형태로 조영이 되었다. 혹시 순장 무덤일까 봐 혼자 생각에 잠기면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된비알을 아카시아와 산초나무 숲을 뚫고 오르니「通政大夫江陵劉公諱秉德之墓, 配淑人夫人平山申氏之墓, 府右巽坐」의 묘소를 만나는데, 정상이지만 아늑하다.

헬기장을 지나 급경사의 북쪽 능선으로 내려오니 역시 고분이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이제는 헤아리는 것도 잊었다. 병성을 향하여 내려오는 능선 길은 점점이 고분의 연속인데, 하나같이 뻥뻥 뚫린 고분들이라 보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사람이 죽으면 흔히 혼(魂)과 백(魄) 두 종류의 영혼으로 나누어진다고 하는데, 이처럼 마구 형편없이 파헤쳐졌는데, 과연 백(魄)은 편안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너무 무심했다고 하는 생각과 함께 어느새 도로에 닿아 답사가 끝났는데, 차라리 보지 말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발굴에 참여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는 삼국시대의 돌덧널무덤(石槨墓)과 돌방무덤(石室墓), 독널무덤(甕棺墓), 수혈유구(竪穴遺構), 집자리(住居址), 고려시대 이후의 널무덤(木棺墓) 등의 무덤이 조사되었고,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의 수혈유구, 독널무덤,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 2기가 확인되었으며, 발굴된 고분들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것은 삼국 시대의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인데, 이들은 대략 다른 영남지방과 마찬가지로 돌덧널무덤이 먼저 축조되고, 돌방무덤이 나중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 결과 봉분 지름 7.0~29.8m에 이르는 봉토분이 도굴 등으로 인하여 심하게 훼손되어 있고, 이곳에서 삼국시대의 토기 편과 함께 조선 시대 자기편이 채집되어 삼국시대, 초기철기 시대 유구부터 조선 시대의 분묘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고분이 조성되어 온 유적이었던 것으로 보고하였다. 이들 유구에서는 지금까지 상주지역의 조사 예로는 드물게 조합식우각형 파수부호와 원형 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유물의 형식으로 미루어 볼 때 2세기경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상주지역의 선사 문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그 고분이 이어진 능선이 장장 3.0km가 넘는 대규모이고, 그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고분은 하나같이 배산임수(背山臨水)형으로 병풍산을 뒤로하고, 병성천을 바라본다.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은 그 형태를 정확하게 관찰할 수가 있는데, 쌓은 돌은 모두가 자연 그대로이다. 무덤 안은 개석(蓋石) 때문인지 밑바닥은 넓지만 위로 쌓으면서 좁아지는 것을 볼 수가 있으며, 비가 오면 충분히 빗물이 들어갔을 테지만 하나같이 밑바닥은 아주 건조하고 청소를 한 듯이 너무 깨끗하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이 고분을 누가 이토록 철저하게 파헤치면서 도굴을 했을까? 아마 한두 해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상주를 2000년 고도라고 하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증표(證票)는 없을 것이다.

 

상주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구조로서 추가장(追加葬)과 관련된 묘제의 지역성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는, 횡구식 석곽묘의 형태는 상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처럼 대규모 고분군이고, 한 장소에 시대적으로

이어져 조영된 고분군은 흔치 않다. 유물은 이미 모두 없어져 형태만 남았지만, 병풍산 고분군이 복원(復元)된다면, 상주 복룡동 유적(국가사적 제477호, 2010. 2. 19)과 함께 2000년 고도 상주를 정립하는데 거침이 없을 것이다. 복원이 시급하고 이보다 더 좋은 관광자원도 없을 것이다. 그에 앞서 고분군의 여러 무덤 형태를 상주 박물관 야외 경내에 재현해놓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참고: 한국 고고학회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