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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11 08:36
상주 연원 하곡서당(霞谷書堂) - 김광희[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글쓴이 : 상주문화원
조회 : 280  

상주 연원 하곡서당(霞谷書堂)

소재지: 상주시 연원동 88-1

 

국도(25호선)에서 북천을 건너 연원으로 들어서면 흥암서원과 전원주택단지를 만나고, 더 나아가면 구서원(舊書院)에 닿고, 오른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안양마을 지나고, 이어 삼거리에 이정표를 만나는데, 왼쪽은 오대이고, 오른쪽 여느물로 방향을 잡는데, 외서면 봉강으로 통하는 도로이다.

 

도로변에 당산(堂山)을 만나는데, 당목(堂木) 한 그루와 선돌이 이색적이고, 정자는 정화루(丼和樓)라 했다. 선돌은 높이 60cm에 평면 원형으로 만든 석단(石壇)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크기는 높이 74cm, 폭 34cm 정도이다. 여너물은 오대 북쪽에 있는 마을로 서쪽 마을은 아래 여너물, 동쪽 마을은 웃 여너물이라고 하고, 가운데 마을은 그냥 여너물이라고 부른다. 전하기로는 옛날 이곳에 우물이 있었으며, 이 우물에 연꽃이 피어서 연우물이라고 불리던 것이 변음되어 여너물로 불린다고 한다. 지금은 작은 저수지만 있다.

 

외서면 봉강리로 넘어가는 고개 우측의 민가 몇 채가 있는 웃 여너물 북쪽 천봉산(天峰山, 435.8m) 서쪽 자락에,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 1491~1554) 목사의 재임(1552~1554) 기간에 세운, 하곡서당(霞谷書堂)은 남향(南向)으로 자리하고 있다. 앞은 야트막한 산이 뱀처럼 길게 남쪽을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온화한 곳으로 여느 서당과는 건물의 모습이 다르다.

 

상산지에는

『在州西七里初建於興旺寺舊基後移於長白寺舊基之右乙卯移建於翠鳳山西麓(서 주 칠 리에 있으니 처음 흥왕사 옛터에 세웠고, 뒤에 장백사 옛 터의 오른편으로 옮겼으며, 을묘년에 취봉산 서편 언덕으로 이건하였다.)』라 적고 있다. 장백사 위치는 상주지역고적조사보고서(1970. 단국대학교 정영호)에 의하면 상주시 연원동 일대로 비정하였고, 정확한 위치 고증은 어렵다고 하였다.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목조 팔작지붕으로 강판 골기와이다. 중앙의 작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각 1칸 온돌방과 왼쪽에 부엌이 있는 일자형(一字形) 집이다. 상주의 많은 서원은 대부분 중당협실형의 3칸인데, 이 서원은 4칸으로 부엌이 한 칸 더 붙어 있어 독특한 모양새다. 편액은 하곡서당(霞谷書堂)으로 걸었는데, 그 이름이 너무 멋있으나 제작 시기는 오래돼 보이지는 않았다. 근래에 벽체를 시멘트로 조잡하게 보수하고, 기와를 강판으로 바꾸어 본래의 모습을 훼손하였으나 골격은 그대로이다.

 

창호(窓戶)의 모양도 서민적으로 아주 소박한데, 대청에서 들어서면 남향한 창(窓)은 안쪽에 좌우로 밀 수 있는 밀 창과 이중문(二重門)이고, 천장은 고미 반자로 멋을 내었다. 대청의 천장은 그대로 노출된 연등 천장이라 해야 하겠다. 주초는 전혀 가공치 않은 자연석(덤벙 주초)이다. 손길이 닿지 않아도 배수는 잘 되는지 건물은 전반적으로 양호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모습대로 중수(重修)가 이루어진다면, 아마 특이한 서원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마가 짧아 서당 앞이 아주 협소하다. 건물 뒤편의 일부 석축과 큰 돌, 앞에 표지석 모양의 큰 돌은 이 서원의 역사를 알고 있지나 않을까, 어디를 둘러보아도 더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또한, 궁금한 것은 상산지에 취봉산(翠鳳山)이라 적었는데, 혹시 천봉산(天峰山)을 이름한 것인지 궁금한 것이 많으나 주변에 물어볼 곳이 없다. 서당에는 서당당록 4권의 구문적이 보관되어있으며, 서당의 건립 및 운영에 참여하였던, 창녕 성씨(昌寧成氏)와 울산 오씨(蔚山吳氏) 등이 관리하고, 매년 동짓달에 취회(聚會)를 가진다고 한다.

 

하곡서당의 유생(儒生)들이 사서(沙西) 전식(全湜, 1563~1642)의 죽음을 애도(哀悼)하며 지은,  하곡서당유생제문(霞谷書堂儒生祭文, 沙西集附錄 2)을 소개하면

「嗚呼先生 而至於斯 寬和之質 純粹之德 已矣不可得而見矣 朝家不幸 耆老云亡 士林多厄 模範誰憑 至於失所依歸 而冥途倀倀之懷 孰有如吾黨者哉 追慕儀刑 冞深摧痛( 아! 우리 선생께서 이렇게 되시다니. 관대한 자질과 순수한 덕망을 갖추신 선생을 이제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말입니까? 조정의 불행이며, 기로가 사라지고, 사림이 큰 액을 만나니 누구에게 모범을 의지해야 합니까? 후학들이 의지할 곳을 잃음에 이르러 어두운 밤길에 방향을 몰라 갈팡질팡하니 우리들은 누구와 함께해야 합니까? 사표를 추모하며 슬픔이 더욱더 깊어집니다.)」이다. (한글 번역 김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