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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08:25
상주 세 번째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두곡리 뽕나무 - 김광희[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글쓴이 : 상주문화원
조회 : 242  

경축! 상주 세 번째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두곡리 뽕나무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 324

상주시 은척면 두곡리의 뽕나무가 ‘상주 두곡리 뽕나무’로 명칭이 변경되어, 경상북도 기념물 제1호에서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제559호(2020. 2. 3)로 지정되어, 운평리 구상화강암, 상현리 반송에 이어 상주에서 세 번째 천연기념물로 경축할 일이다. 두곡리(杜谷里)는 본래 상주 목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원당(院堂), 동막(東幕), 포양(浦陽)을 병합하여 두곡리라 하였으며, ‘띠실’ 이라 한다.

이 마을에 수령이 300년(지역에서는 400년)으로 추정되는 두곡리 뽕나무는 보기 드문 뽕나무 노거수로, 나무 높이 10여 m, 가슴높이 둘레 3.93여 m, 수관(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부분) 폭 동서 12.7여 m, 남북 16.2여 m이며, 문화재 구역은 총 7필지 2,585㎡이다. 두곡리 뽕나무는 아름다운 수형(樹形)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많은 양의 오디가 열릴 정도로 수세(樹勢)가 양호하다. 특히 양잠이 번성했던 상주의 생활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민속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번에 지정이 된 것이다.

뽕나무 앞에는 일제강점기 때(1935년) 상주 군수 최병철(崔秉轍)이 세운 명상기념비(名桑記念碑)가 있다. 고령(高齡)의 이 뽕나무는 누에고치의 본고장이라 자랑하는 상주(尙州)의 오랜 양잠 역사(養蠶歷史)와 전통(傳統)을 입증해 주는 노거수(老巨樹)로 주목(注目)을 받아 왔는데, 뽕잎은 누에고치 30kg을 생산할 수 있는 잠종 1상자(箱子: 20,000粒)의 누에를 사육할 정도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뽕나무는 창덕궁 관람지(觀纜池) 입구에 있는 뽕나무(제471호, 2006.4.6)가 유일하고, 수령은 400여 년으로 추정한다.

뽕나무는 낙엽교목(落葉喬木) 자웅이주(雌雄異株)로 6월에 꽃을 피우고, 오디라는 열매를 맺는데, 한의학에서는 약재로도 쓰여 백발의 머리를 검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뿌리껍질(상백피)은 한방에서 해열진해이뇨제소종(消腫)에 쓰이고, 꽃말은 지혜와 못 이룬 사랑이다. 대부분의 열매 나무는 나무 이름과 열매 이름이 같지만, 뽕나무는 전혀 다르다. 양잠은 일찍이 백성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식을 갖춘 친잠례(親蠶禮)와 수견례(收繭禮)로 구분하였고, 기록은 1411년(태종11)부터 보이고, 왕비가 직접 행한 것은 성종 때(1477년)로 알려졌다. 누에는 굶어 죽을지언정 뽕잎 이외에는 먹지 않으며, 알~애벌레~번데기~나방으로 완전변태이고, 한 마리의 나방이 약 300~500여 개를 낳는다. 고치를 짓기 위하여 한 마리의 누에는 약 1,000~1,500m의 실을 뿜어낸다.

조국근대화에 외화 획득의 효자작목이 바로 잠업(蠶業)이라는 사실이며, 이를 바탕으로 세계경제대국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상주는 ‘삼백의 고장’ 명성에 걸맞게 1970년에는 2,557ha로 상주 최대의 면적에 이르고, 1974년에는 상주에서 1백만kg의 고치를 생산하여, 마침내 전국 제1의 잠업생산지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화려했던 그 시절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는데, 교육기관으로 경북대 상주 캠퍼스(상주공립농잠학교, 1921년 개교), 행정기관으로 경북 잠사 곤충사업장(1930년), 명주 박물관, 누에의 영혼(靈魂)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해중석(海中石)의 잠령탑(蠶靈塔, 1930년, 잠사 곤충사업장)과 또 하나의 잠령탑(1931년, 상주캠퍼스), 잠종(蠶種)을 저장하는 냉장고(冷藏庫, 상주 캠퍼스), 명상기념비(名桑記念碑) 등 곳곳에 문화재급으로 손색이 없는 잠업유적이 많다.
 

경북대학교 상주 캠퍼스 내 잠종 냉장고 복원기(復元記)는

「이 냉장고(冷藏庫)는 개교 초(開校初)부터 잠종(蠶種)을 저장 할 목적(目的)의 빙고(氷庫)로 저 1960년대(年代)까지 제구실을 다 해오다가 당시 남성동(南城洞) 교사(校舍)의 시설확장(施設擴張)으로 인해 훼철되었었다. 이제 가장리(佳庄里)로의 캠퍼스 대 이전(大移轉)과 더불어 65주년(周年)을 기념하여 이병춘(李秉春) 同門(農蠶14)의 성금(誠金)으로 옛 모습을 되살리게 됨을 감사(感謝)드리며 후대(後代)에 물려주게 된 기쁨을 이 작은 돌을 놓아 새겨둔다. 1986년 5월 15일 학장(學長) 이낭우(李瑯雨)」라 적었고, 그 앞에 잠령(蠶靈) 탑(塔)이 함께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으로 활기찬 양잠산업이 1980년대부터 사양길로 접어들어 일반농가에서 누에를 치는 것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고, 교육 역시 지역에서는 잠업 또는 잠사학과도 없어졌다. 최근에는 화장품, 의약품, 건강식품, 신소재직물 등의 원료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고, 상주 함창은 명주 고장이라 십 수호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뽕나무 천연기념물 지정에 힘입어 명주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축제와 ‘한복진흥원’이 개원하면 새롭게 태어날 것으로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