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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05 08:37
상주 경상감영과 경상제일문 - 김광희[문화관광해설사]
 글쓴이 : 상주문화원
조회 : 34  

상주 경상감영과 경상제일문
 상주시 삼백로 327-9

중부내륙고속국도 상주 나들목을 나와 서쪽 상주 시내 방향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인공폭포가 있는 삼거리에서 잠시 나아가면 좌우에 ‘삼백농업농촌테마공원’과 ‘국민체육센터’를 만나고, 노악(露岳)과 석악(石岳)을 배경으로 그 규모도 웅장한「경상제일문(慶尙第一門)」이 길손을 반긴다. 그 왼편으로 경상제일문과 연이어 조성한 상주 최대 한옥단지가「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이다.

상주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역사적으로 사벌국(沙伐國)이 있었으며, 낙동강의 명명지(命名地)이고, 경상도(慶尙道)의 이름을 낳은 곳이요, 지리적으로는 물길과 산길을 갈라놓은 곳으로써 우리나라의 중심지이다. 이러한 배경이 밑바탕이 되어 1392년(태조 원년) 경상감영이 상주목(尙州牧)에 개영(開營)된 이래 좌(경주) 우(상주)로 나뉜 적은 있었으나, 1593년(선조 26년) 성주(星州)로 옮기기 전까지 자그마치 200여 년간 경상 감영지(慶尙監營地)였었다. 지난 10.31 보물 제2039호로 지정된 ‘경상도영주제명기’도 이를 뒤받침하고 있다. 지금도 교통 여건으로나 역사·문화적 배경으로나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웅도(雄都)로 거듭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에 상주시에서는 조선 시대 경상도의 중심지로서 역사적 상징인 경상감영 재현과 경상제일 문이라는 현대적 연출을 통해 옛 경상도 수도(首都)로서 이미지를 확보하고, 상주의 위상과 자긍심을 높이고자 사회·문화적 여건의 성숙에 따른 관광자원 개발의 목적으로, 1912년경 상주읍성이 허물어진 이후 이곳에, 상주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태평성대 경상감영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대지 65,114㎡(19,697평)에 한식목구조물 16개 동을 2016년에 시작하여 이제 완공을 눈앞에 두고 마무리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경상감영공원을 들어서면 태평루 앞에 상주성도(尙州城圖)의 모형을 바닥에 깔아놓아 읍성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동헌 아문(衙門)의 문루 태평루(太平樓)를 지나 내삼문으로 들어서면, 목민관이 주재하던 동헌(東軒)은 편액을 청유당(聽猶堂)이라 걸었고, 서헌(西軒)은 제금당(製錦堂)이라 했다. 청유당 서편에 주아(州衙)는 목민관의 살림집인 내아(內衙)이다. 그리고 객관 문 밖의 진남루(鎭南樓), 객관 동편에 풍영루(風詠樓), 육방(六房)의 우두머리가 집무하던 작청(作廳), 형옥(刑獄)이라고 할 수 있는 군뢰청(軍牢廳), 사령이 모여 있던 사령청(使令廳), 진상품과 군기를 조성하는 공고(工庫), 객사인 상산관(商山館) 등등 모두 16개동으로 거대함을 자랑한다. 진남루에 올라서면 동북쪽으로 경상제일문과 국민체육센터, 병풍산이 조화(調和)를 이루고, 동으로 ‘삼백농업농촌테마공원’과 식산이 멋을 부린다. 서쪽으로는 아파트 숲 사이로 노음산이 높이 솟아 대도시에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남으로는 광활한 상주 벌이 이어지는 사방 모두 한 폭의 그림이다.

국도 25호선 왕복 4차로에 세워진 경상제일 문(慶尙第一門)은 공모(公募) 선정 결과 얻어진 이름으로 상주목 설치 천년(千年)을 맞이하여, 역사문화 고도(古都)의 정체성 확립과 도시 이미지 쇄신을 위한 목적으로 상주의 상징 문(象徵門)이다. 그 규모는 정면 11칸, 측면 1칸, 굴도리에 다포형식, 우진각 기와지붕에 용마루 양 끝에는 용두(龍頭)를 세웠고, 추녀마루 끝에도 용두(龍頭)와 잡상(雜像)을 얹어 위엄을 더했으며, 전장 64.0m, 폭 7.4m, 높이 14.0m로 차량과 보행자 터널(2)이 구분되어 있다. 앞뒤로 상징 문을 돋보이게 하는「慶尙第一門」편액은 소파(小坡) 윤대영(尹大榮)의 서(書)이다. 여느 문(門)과는 달리 좌우로 건널 수 있어 육교(陸橋)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으로, 이곳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는 맛은 남다르다 할 것이다. 이 문은 상주의 상징 문으로서 조공제(趙公堤), 북천 벚꽃 길, 상주여자고등학교, 태평성대 경상감영, 국민체육센터, 다양한 조각들이 함께하는 삼백농업테마공원과 연계되어 지역의 랜드마크(landmark)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해마지않는다.

지역민들은 이곳을 봇들 중에서도 ‘새봇들’이라 불렀다. 북천과 남천이 합수되는 지점에 형성된 토지는 넓고, 비옥하여 농작물 재배에 아주 적지이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구에서 이전한 경상북도 잠종장(1962~2013), 상주 잠업 초급대학(1965.1.15~1970.2.13) 등이 세워져 제몫을 다하고, 오늘의 이러한 공원으로 멋스럽게 탈바꿈되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 널따란 대지 위에 세워진 동(棟)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편액(扁額)의 의미를 되새기며, 천 년 전 상주고도(古都)로 여행을 해 보는 멋도 괜찮으리라. 이곳의 공원들이 이제 우리 시민들이 손질하고 정성을 다해 가꾼다면 새롭게 태어나 다시 한번 상주발전에 크게 보탬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