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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8-12 08:26
상주 백악산 자락 아래 신흥사(新興寺) - 김광희[문화관광해설사]
 글쓴이 : 상주문화원
조회 : 93  

상주 백악산 자락 아래 신흥사(新興寺)
상주시 화북면 중벌2길 32

백두대간이 상주에 들어서며 청화산(靑華山, 970m)을 솟구치고, 다시 늘재로 내려앉아 또다시 솟으니 경미산이다. 이곳에서 대간은 서쪽으로 백악산(百岳山, 855.1m), 낙영산, 도명산(道明山, 650.1m)으로 이어지는 한줄기를 내보내어 달천에 잠기게 하니, 이를 우리는 「백악지맥」이라 부fms다. 다시 대간은 남으로 밤티로 내려앉았다가 한국 최고의 명승지 ‘문장대(文藏臺, 1054m)’를 빗으며, 상주 최고봉 천왕봉으로 내달린다. 남으로는 문장대에서 관음봉, 묘봉, 상학봉에 이어 서쪽의 검단산에 이르기까지「속사 지맥」이 병풍처럼 둘러친, 백악산 자락 남쪽 아래로 내려앉은 중벌리(中伐里)에 아담하고도 소박한 사찰, 신흥사(新興寺)가 자리한다.

신흥사는 조계종 산하의 전통사찰(1988. 7. 21 등록)로 경내로 들어서면, 연(蓮)의 복엽(覆葉)과 앙엽(仰葉)의 대좌 위에 세운 석조 미륵 대불이 눈에 들어오고, 문(門)에 국화문양을 새긴 작은 전각 앞에, 아주 큰 키를 자랑하는 전나무와 적지 않은 연륜의 측백나무가 그 역사를 알리고 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약사전(藥師殿), 삼성각(三聖閣), 칠성각(七星閣) 등이 세워져 있다. 높은 단(段) 위에 최근 불사한 대웅전은 부처님과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고, 천장에 별도의 닫집은 보이지 않으나, 단청(丹靑)의 모습은 여느 절에서나 볼 수 없는 특이한 문양이다.

이 절은 1925년 김교순(金敎順, 1881~1968) 보살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약사전의 약사여래좌상은 높이 75cm, 밑너비 60cm,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육계는 낮지만 뚜렷하다. 왼손에는 약합(藥盒)을 들고, 오른손은 펴서 무릎을 덮고 있는데, 불의(佛衣)는 통견형식으로 고려 시대 작품이라 전한다. 법당에 안치된 탱화는 1873년(고종 10)에 조성한 것이고, 나반존자(那畔尊者)와 산왕 제신 상(山王諸神像)의 민화 2점도 보존하고 있다.

김교순 보살은 1881년(고종 18) 경북 예천 출생으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21세 되던 해인 1901년 보은 속리산에서 용허선사(龍虛禪師)로부터 보살계를 받아 불명(佛名)을 안락행(安樂行)이라 하였고, 그 뒤 1925년 신흥사를 창건하여 사천왕문을 비롯하여 칠성각과 약사전, 대웅전 등의 불사를 이루었다.
또한, 김씨는 법당 건립 후 1926년 1월에 이른바 ‘국화문사건(菊花紋事件)’에 연루(連累)되어, 대구재판소에 수감 중이던 20일간 단식(斷食) 염불을 해 일본인 경사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듬해 석방된 뒤 중생구제(衆生救濟)와 염불(念佛) 및 참선(參禪)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재가 불자로서 수행하고, 불사를 일으킨 김 보살은 신흥사에서 독좌참선(獨坐參禪) 중 홀연히 입적(入寂)했으며, 다비(茶毘)할 때 사리방광(舍利放光)하였다 한다. 이 사찰의 내력을 기록한「金敎順女史舍利及新興寺創建碑」(1970년)와 부도가 있는데, 비문(碑文)은 동학사 13대 강주(講主)를 지낸 호경(湖鏡) 스님이 지었다.

국화문사건(菊花紋事件)은 전각(殿閣) 문살에 국화문양을 조각을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당시 대일항쟁기이므로 국화문(菊花紋)은 일본 천황가(天皇家)의 전용(專用)이라 일반 국민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데, 동아일보(1923.5) 기사를 보면 「菊花紋指環을 경찰서에서 검사, 시내 각 금은방에서는 반지에다가 국화문(菊花紋)을 노화파랏는대 그국화문인즉 일본황실(皇室)의 어문(御紋)임으로 혹불경한뎜이나 업슬가하야 구일종로경찰서보안계에서는 관내 중요한 금은상에게 국화문노흔 반지를 한 개식 가지고 출두케 하야 심사를 한 결과 국화문은 국화문이나 황실의 그것과는 다소 양식이 다름으로 다만 일 후를 훈계하고 각각 돌녀보내었다더라.」라 적고 있어 국화문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리하고, 통제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 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몇몇 스님과 김교순 보살, 그리고 따님에 이어 지금은 외손녀가 지켜오고 있었는데, 2019년 7월에 ‘정우’ 스님이 신흥사로 오시면서, 법주사에서 해인사 말사로 이 절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스님은 분청(粉靑)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판각(板刻)을 봉행(奉行)하고자 하는 큰 불사를 수행 중이다.

대장경 불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단 두 번밖에 조성되지 못한 불사 중의 불사이다. 첫 번째 고려대장경 판각 불사는 1,011년에 시작하여 1,088년에 회향한 대장경 불사이다. 그러나 1,232년 몽골의 침략으로 소실(燒失)되고 말았다. 현존하는 대장경은 1차 대장경판이 소실된 후 4년 만에 다시 조성하기 시작하여, 1,251년 15년 만에 완성을 본 재조(再造) 팔만대장경이다. 스님은 여러 가지로 미루어 짐작할 때, 역사적인 세 번째 대장경판 불사의 시절 인연이 도래(到來)하였음을 직감(直感)하고, 그 일을 결행하고자 한다.
그것도 목조 경판은 천 년이면 그 수명도 다하게 되므로 제3차 대장경 경판 조성 불사는, 그 빛깔이 수려하고 재질도 탄탄하며 영구적으로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분청자기판(粉靑瓷器板)」으로 조성한다고 한다. 신흥사 경내에 “신한국통일분청 대장경연구소”라는 편액을 걸고, 이 역사적인 대작 불사에 한민족 모두 일인(一人) 일자(一字)에 동참하여, 개개인의 원력을 모아낸다면 능히 해낼 수가 있다고 한다.

사방(四方)이 수려한 자연경관에 둘러싸인 신흥사에서 그 기(氣)를 모아 역사적인 걸작품이 태어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인근에「충의공정기룡장군임란전첩비」와 의사 유적비(義士遺蹟碑), 향토방위용사 전적비, 건립기 비(2017.11.15) 등이 세워져 호국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으며, 미타사, 공림사, 견훤산성, 온천, 속리산 국립공원 등이 있어 너무나 좋은 곳임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