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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24 08:40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 김광희[문화관광해설사]
 글쓴이 : 상주문화원
조회 : 24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
상주시 화서면 신봉리 산51

백두대간이 화령의 봉황산(鳳凰山, 740.8m)에 이르러 서쪽으로 팔음지맥을 내보내고, 이어서 뒷덤넘골 위를 지나다 남으로 작은 줄기를 뻗으니 화령전적기념비가 자리한 야트막한 동산이다. 그 아래 국도 25호선 도로변에 광나무로 둘러싸인 비각(碑閣) 속에 신봉리 석조 보살 입상(石造菩薩立像)은 지방 문화재자료 제126호이다. 신봉리는 본래 화령현의 지역이었으며, 후에 상주군 화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이동(泥洞)· 솔의(率儀)· 봉정(鳳亭)· 신봉(新峯)· 당전리(堂田里)를 합하여 신봉리라 하고, 이는 봉황산이 드높아 신봉이라 했다고 한다. 화서면의 소재지로 면(面)의 중심지다.

이 석조 보살입상은 대좌(臺座)가 없이 높이가 230cm, 두고(頭高) 56cm, 보관고(寶冠高) 23cm, 어깨 폭 66cm, 가름 폭 33cm, 신장(身長) 21cm, 두광경(頭光徑) 90cm, 신광 광폭(身光廣幅) 120cm, 신광 하폭(身光下幅) 72cm, 양각후(陽刻厚) 2.5cm 정도로 머리에는 3면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넓적한 한 매의 판석(板石)에 돋을새김을 했으며, 두상과 하부가 정연한 데 비해 하체가 빈약하게 보이고, 장식성이 적어 조성연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이 입상은 불당골에서 옮겨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위치가 여기가 아닌 것으로 보이며, 처음에는 비스듬히 누워있었는데 바로 세우고, 2006년도에 사방 한 칸의 겹처마 목조 맞배 기와지붕의 보호각을 세워 오늘에 이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살상의 윤곽은 아주 선명하다.
상주에 보물로 지정된 부처님의 입상과 좌상은 여러 곳이 있으나 보살상은 상주 사벌면 목가리 석조 관세음보살입상과 두 곳으로 알려져 있어 보기가 쉽지 않다.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사(音寫)인 보리 살타(菩提薩埵)의 준말로, 그 뜻은 일반적으로「깨달음을 구해서 수도하는 중생」,「구도자」,「지혜를 가진 자」들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사찰에 대웅전(大雄殿)이라는 편액을 걸고 있는 법당에 들어서면 중앙에 부처님을 모시고, 왼쪽에 보현보살과 오른쪽에 문수보살을 협시 불로 모시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대승 경전들과 여러 관련 불교 문헌에는 관세음·문수·보현·지장·미륵보살 등 수많은 보살이 있다. 이들은 석가모니가 아니며, 따라서 본생보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별개의 개성을 가진 개개인격으로서 복수로 되어 있다.

이 보살 중에는 중생을 교화하여 구제하겠다는「하화중생(下化衆生)」의 대원(大願)을 발하여 부처가 될 권리를 유보하고, 윤회의 세계에 머물러 구제(救濟)에 나서고 있는 보살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적으로 최후에는 불과(佛果)를 성취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복수의 부처 출현을 예견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처럼 단수로서 석가모니부처만을 가리켰던 보살이 복수로서 중생을 뜻하게 됨에 따라 과거·현재·미래에 다수의 부처가 있다는 다불사상(多佛思想)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전생의 석가모니 보살과 같은 특정의 보살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불(成佛)하겠다는 서원을 일으켜서 보살의 길로 나아가면 그 사람이 바로 보살이며, 장차 성불할 수 있다는「범부보살사상(凡夫菩薩思想)」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보살 사상은 공사상(空思想)과 결합하여 대승불교의 바탕을 이루었다.
대승의 보살 사상 중 기본적인 두 개념은 서원(誓願)과 회향(回向)이다. 그것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이며, 자기가 쌓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남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회향이다. 그리고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 것을 자원하여 일체의 중생을 먼저 깨달음의 세계(彼岸)에 도달하게 하는 뱃사공과 같은 자라고 설명되고 있다.

보살은 또 실재하였던 고승(高僧)이나 대학자에 대한 일종의 존칭으로도 사용되었다. 인도의 용수(龍樹)·마명(馬鳴)·무착(無着)·세친(世親) 등이 보살로 불렸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원효(元曉)가 보살의 칭호를 받았다. 나아가 요즈음에는 재가(在家)·출가(出家)를 막론하고 모든 불교도에게 확대되었다. 이 보살 사상은 특히 중기 대승불교 이후 성하였던 여래장(如來藏)·불성 사상(佛性思想)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발전한 대승불교의 정화(精華)라 할 수 있다.』라 설명하고 있다.

화서(화령)에는 볼거리가 많아 바로 옆 비석거리에는 곡식 천 석을 풀어 만인을 구제한 서봉징 만인 적덕비(徐鳳徵萬人積德碑), “우복동 어디메냐 경상도라 화령 땅을 상주에서 칠십 리요 하늘에서 칠십 리라……” 라는 화령 노래비 등등, 현충 시설인 무공 수훈자 공적비(30-2-27), 화령 전적비, 화령전승기념관, 천연기념물 제293호 반송, 태봉, 봉산서원, 옥연사, 효자 정재수 기념관, 성산산성, 화령고성, 협시 불(脇侍佛)이 이채로운 백운사(白雲寺), 봉황산, 천택산, 식량 과학원 등이 상주~청원 간 고속국도 화서 나들목과 가까운 곳에 있어 접근성이 아주 좋은 지역이다. (참고: 네이버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