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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명 황령사(등록번 가102호)
주      소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황령리 35번지
황령사(黃嶺寺)는 상주시 은척면 황령리 35번지, 칠봉산(七峰山) 밑에 있으며, 조계종 산하의
전통사찰로 1988년 7월 21일 등록되었다.

신라 27대 선덕여왕 7년(63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진성여왕 3년(889년) 대구화상이 중창하였다는 황령사 제작 안내가 있으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1924년(융희 18)의 사적기에 의하면, 초창은 미상이고, 1901년 석교화상이 중수하였고, 1924년 도허스님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임란전까지만 하여도 대사찰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서상실, 백련암, 중실종각, 동상실, 금읍전, 나한전, 시왕전, 응향각, 천연당, 승당, 선당, 극락전, 청묘암, 망일암 등이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함창을 중심으로 일어난 창의병의 발원지로 인하여 병화(兵火)를 당하였다.

특히, 1254년(고종 41) 10월, 몽고군 차라대(車羅大)가 상주성(백화산성)을 침공할 때 황령사 승려 홍지(洪之)가 민병을 거느리고 나가 격퇴했다는 기록(삼국사기)만으로도 이 절은 고려 때 존재하였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민간인으로 승첩을 거둔 최초의 전과라 할 수 있다.

또한, 1592년 임진 왜란이 발발하자 함창을 중심으로 창의한 의병, 즉 창의군(昌義軍)의 근거지가 되어 호국의 도량이 되기도 하였으니, 이는 이 절이 고려 이래로 국토수호의 호국 사찰로서의 높은 정신을 이어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고려의 대선비인 백운 이규보가 이 사찰에 머물면서 시(詩)를 남긴 것으로 보아 큰 도량이었다.

주요문화재로는, 황령사 아미타 후불탱이 2002년도에 지방문화재(337호)로 지정되었다. 이 탱화는 1786년(정조 10)에 제작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185세티미터, 세로 178센티미터이다. 당시 경기도 화파인 상겸파가 경북지역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관음전내의 대세지보살상은 1729년(영조 5) 5월에 당시 경상우도 용궁현감이 동령 백화산 천덕사(天德寺)에서 옮겨온 것으로서 불상은 그 이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