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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명 |
월간 창석 형제 급난도 |
주 소 |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산17-8 상주박물관 |
지 정 |
지방유형문화재 제217호(1986.12.10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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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급난도](兄弟急難圖)는 월간(月澗) 이전, 창석(蒼石) 이준(李埈)선생 형제의 출천한 우애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체제는 세로 29cm 가로 21.5cm의 저지한장본(楮紙韓裝本) 오침법(五針法)으로 총 56丁(112面)의 첩장(帖裝)이다.
이 그림이 탄생한 동기는 임진왜란 이듬 해인 1593년 봄에 창석선생이 백씨 월간과 함께 중모(中牟)의 고모담(고모潭)에 있던 향병소(鄕兵所)에 머물러 있을 때 갑자기 왜적이 쳐들어 왔다. 당시 창석 선생은 곽난(음식에 체하여 토하고 설사함)으로 거의 기동을 못하여 그는 형에게 병으로도 죽을 몸이니 형님이나 피신하여 가문을 보존해 달라 간청했으나, 형은 끝내 동생을 업고 백화산(白華山) 정상으로 피해 그 생명을 건지었다. 이 사실을 창석선생이 1694년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이 되어 명(明)에 갔을 때 중국인에게 이야기하니 그들이 감동하여 화공에게 시켜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그림의 배경은 백화산이라 명시해 놓고 하늘을 가린 왜적의 기치가 산아래 진을 치고 창검을 든 왜적이 두 형제에게 다가오자 형이 아우를 설득해 업고 떠나는 장면과 업고 가던 아우를 내려놓고 눈앞에 선 왜적을 향해 형이 화살을 겨누는 장면 간신히 적을 퇴치하고 산정을 향해 아우를 업고 달리는 모습 끝으로는 백화산 정상 밑에서 아우를 내려놓고 위로를 하는 네 장면을 그리되 극히 사실적이며 운필이 대담하다. 비록 중국 화공에 의해 그려졌지만 2면 가득한 그림 자체만으로도 절박했던 상황과 지극한 형제애를 절로 감지하게 하였다.
이 그림이 완성되자 창석은 경향의 유명인에게 이 사실을 소재로 하여 시문을 청하였는데 이 글도 부록으로 그림 뒤에 부치었다. 당대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학자로서 문인으로서 방명을 남기고 있는 분들 이 글로써 이 두분 형제애를 찬미하였는데, 차천락, 손기양, 이안눌, 유근, 정백창, 이민구, 이식, 조형, 이경석, 전극항, 홍여하 등으로 당대 명인은 거의 망라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림도 중하지만 남의 아름다움을 같이 아름답게 나눈 선비들의 시문은 그것대로 널리 알려져야 할 소중한 것들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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